예술에 대한 단상(斷想)

종교 개념이 구체화되기 전 시대인 고대에서 예술은 주술(呪術)의 성격이 강했다. 예술이 현대의 예술 개념을 갖게 된 때는 종교예술로 대표되는 중세로 진입하면서 시작된다, 교회 중심으로 신을 위한 예술이었고 인간은 배제된 형태였다. 예술 특히 미술이 자유로운 기예(技藝)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점은 16세기에 이르러 학문과 예술을 분리하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다. 르네상스로부터 예술이라는 독자적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지만 예술은 여전히 소수 귀족의 전유물로 남았다. 일반 시민들의 예술에 대한 인식이나 안목의 부족이 그 이유 중 하나였으며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불할 경제적 여유를 가진 부류는 안타깝게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상류층 일부에 국한했었기 때문이다.

근대적 미학(美學)의 개념이 도입되고 예술이 독자적인 영역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시기는 18세기에 들어선 이후의 일이다. 순수예술(純粹藝術, fine art)이라는 용어도 프랑스 평론가이자 철학자인 바퇴(Charles Batteux)가 이 무렵에 정립한 개념이다. 여기서 독자적인 영역이라 함은 ‘인간만의 독자적인 활동 영역’을 의미한다. 자본을 축적한 부르주아 시민계급이 르네상스 후기부터 서서히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예술 분야 지원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18세기 이후 근대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예술을 가장 강력히 지원한 세력은 위에 언급한 대로 자본을 축적한 부르주아 시민계급이었으나 그 이전과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그들은 ‘익명의 다수’였을 뿐 예술가들에게 더 이상 자신들의 요구에 맞는 작품을 제작하도록 요구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예술가는 이미 사회적으로 독립된 존재였고 그들이 만든 작품은 그들 자신의 절대적 소유물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얼핏 보기에 바람직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작품들이 ‘상품’으로서 ‘시장’에서 소비될 때에만 예술가들은 경제적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팔리지 않는 작품이나 작가는 그 위상과 명성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린다. 부르주아에 의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체제를 떼어놓고서는 예술을 논하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21세기 대한민국의 예술계 현황 역시 이런 역사적 조류에서 한 치의 예외를 찾아볼 수 없다. 예술이나 문화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나 관심 정도가 기대 평균치보다 한참 부족하다는 느낌이며, 현 시대를 압도하는 가장 큰 물결인 ‘대중문화’의 영향을 피해가지 못한다. 예술가의 본연을 유지하자니 소비자에게는 부담이고,대중의 기대를 따르자니 예술의 본령을 무시해야 하는 모순을 접하게 된다.

한국적 문화예술의 현주소를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으나 지난 십여 년 넘도록 정치 영역과 갈등을 빚어온 현실을 간과(看過)할 수 없다. 일정 부분 예술이 담당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역할과의 관계로 인해 예술의 정치 예속화 혹은 정치의 예술에 대한 편향 등을 수없이 겪어온 한국이다. 예술이 예술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바람직한 풍토가 형성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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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후정

스마트화가

사)한국문화예술가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