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전통문화

 

애초의 인류 예술 출발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예술의 탄생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생존을 위한 행위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우리나라 장승 등을 꼽을 수 있다. 우선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잡고 싶은 동물을 생각하며 간절한 생존의 욕구를 벽에 새겼다. 주술적인 의미이었음에도 이 벽화는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미술사에서는 예술의 출발로 여긴다.

 반면 우리나라 장승의 경우를 보면 알타미라 동굴벽화와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대중들에게 다가온다. 장승은 기층민들이 마땅한 신앙이 없던 시절에 터전의 입구에 세웠던 표상이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재앙을 막아 한해의 풍농과 안녕을 빌었던 신앙으로서의 기원을 담은 표상이었다. 그 장승 조형의 기예는 괴이하고 험상궂기도 하지만 때로는 낯설지 않은 자상한 미소와 친근감을 준다. 이는 보잘 것 없는 우리네 민초들의 믿음 대상이자 생존의 염원을 형상으로 표한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장승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는 데는 너무나 인색한 우리나라 미술계에 대해 필자는 약간의 반감을 느낀다.

 주지한 바와 같이 예술의 출발이 생존을 위한 방편으로 태동하였다고 본다면 벽화와 장승은 당연히 같은 맥락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현 미술계의 시각에 괴리감을 느끼는 것이다. 필자는 장승을 조각하는 장승조각가이자 전국의 옛 장승을 찾아 20여 년간을 답사하고 사진으로 남겼으며, 부족하나마 논문도 남겼다. 장승이라는 훌륭한 예술작품에 단순히 전통문화라는 허울 좋은 옷만 입혀놓고 예술적 가치는 평가절하 되고 있다. 이러니 자꾸 뒤처지고 외면당하는 듯한 현실에 회의감과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장승은 우리민족의 역사와 풍토를 기반으로 저절로 생성된 자생성의 산물이다. 알타미라 동굴벽화 역시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생성한 자생적 산물로서 그 예술성은 인류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네 장승은 전통문화의 울타리 속에다 가두어 놓고 예술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민족의 자생적 산물인 장승이 문화를 뛰어 넘어 이제는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해 보고 평가받는 시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누군가는 나에게 어떤 장르의 예술작품을 하느냐고 물어올 때, 장승조각가라고 말하면 일순간에 조소로 돌변하는 모습이 읽혀질 때의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진정한 우리 민족예술의 출발과 예술의 역사를 등한시 하고 마치 서양미술 만이 예술작업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들도 고전 미술의 영역도 탐색해 볼 기회를 가지기를 소망해 본다. 장승의 예술적 가치에 천착하는 내게 스스로의 위안이 아닌 우리 전통문화가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그런 예술로 꽃피기를 기원해 본다.

KakaoTalk_20210601_225342681.jpg

이 재명

 

장승조각가, 목공예가, 사진작가
대한민국전통장승 명장
함안장승문화예술학교 대표
전국 장승깎기대회, 장승축제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장 다수
(사)한국문화예술가협회 자문위원